일본 폭주족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일본 폭주족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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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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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폭주족

 

그들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일본은

세계 2차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막대한 빚을 지며

경기가 어려워 지지만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다시경제 성장의발판이 마련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호경기는

전자 제품의 발전

큰 영향을 끼쳤고

오토바이 산업도 

크게 성장하는 계기

가 됩니다.

 

 

 

사실 오토바이 폭주족의 시초는

 

자신의 오토바이를 자랑하거나

머플러 소리 크기를 경쟁하거나

스피드를 즐기는 정도

 

지금의

동호회 규모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제호황기에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게되자

 

자연스레

여가생활에 소비하는 사람들이늘어났고,

 

이때부터

'번개족' 이라 불리우는

 

 

 

 

 

공도에서 오토바이로

 

속도를

 

즐기는 집단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들은

'마하노리'라 불리우는

 

마치 슈퍼맨처럼 곡예주행을

하는것이 유행하였습니다.

 

 

 

 

 

 

 

 

 

1970년대에는

혼다, 가와사키등의 오토바이들이 출시되고,

 

불티나게 팔리면서

바이크 산업이 엄청나게 확대됩니다.

 

 

 

 

 

 

 

고등학교에  입학과 동시에 면허를 취득하고

오토바이를 구매하는 청소년층도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동호회 수준의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공도를 달리는 것은

 

역시나 민폐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폭주족들의 탄생이라

 

할 수 있는 계기인 영화가 개봉하는데

 

 

 

바로 미국의 '이지라이더'라는

영화가 개봉하면서

 

오토바이를 타는 집단의 분위기가

반 사회적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히피를 상징하는

'쵸퍼' 오토바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미국에서 군용오토바이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튜닝해서

타는것이 크게 유행하던 시기였습니다.

 

히피문화는 세계대전,베트남전으로 인하여

미국내에서 반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게 됩니다.

 

 

 

 

 

 

 

일본에서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오토바이를 타는 집단들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1972년 6월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폭주족' 이라고 이름지어진

 

'도야마 사건'이 발생합니다.

 

 

 

 

 

3000명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차량을 부수고

상점을 약탈하는 등의

사회적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경찰은

 

오토바이로 때로 다니며

문제를 일으키는 집단을

'폭주족'이라 명칭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전역으로

 

'대 폭주족 시대' 가 열리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폭주족 집단은

관동연합이라는 큰 집단인데

 

 

불량청소년들이

패싸움을하고

말그대로 폭주를 뛰는

큰 단체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 관동연합은

1960년대부터 1992년까지

도쿄를 중심으로

 

구성원이 무려 2000명이

넘는 대조직으로 성장하였지만

 

경찰의 지속적인 단속으로 와해되고

 

 

90년대말 이 조직출신들이

다시 조직을 만들어

 

 

 

 

'블랙엠페러', '극악', '스펙터'

유명 폭주족들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90년대말의 이 폭주족들은

 

단순히 이전의

 

사고를 치는 수준을 넘어서서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집단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특히 

블랙엠페러의 창시자이자 수장이었던

'미타테 신이치'

 

여러 살인사건과 범죄에 연루되어

 

현재까지도 인터폴의 수배를 받고 있습니다.

 

 

 

 

 

'스펙터' 라는 폭주족도

 

1000대 이상의 오토바이를

 

보유할 정도로 큰 조직으로 성장하였는데

 

 

 

 

 

 

이 때 폭주족 역사상 가장 큰

 

싸움이었다고 하는

 

'시치리가마' 사건이 발생 합니다.

 

 

 

 

 

 

 

이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카나가와 레이싱연합,

스펙터의 CRS연합,

전광연등이

 

무려 600명 정도가 패싸움을 벌이며

경찰 5명을 포함 총 27명이 큰 중상을 입었고

 

자동차 4대가 완전 연소되고

28대가 망가지

 

큰 규모의 싸움이 일어났고

 

이 사건으로 체포된 인원은

472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정부는

폭주족의 심각성을 느끼고

 

오토바이의 면허체계를

소형과 중형을 나누는 제도로

바꾸게 됩니다.

그로부터 3년 후

폭주족 대책으로

공동 위험행위를 금지하는

도로교통법까지 개정합니다.

 

 

 

 

폭주족 최 전성기인

 

1980년대에는 전국에

폭주족 수가 4만명 에 달하였고

 

 

 

 

2002년도에는

 

전국에 1300여개 이상

 

폭주족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폭주족 학원물 만화들이

크게 유행하였으며,

 

 

이 시기에 '상남2인조' 등의

만화들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일본정부에서

대대적인 폭주족 단속을 시작하며

 

오토바이 두대가 나란히달리기만 해도

2년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 면허취소같은

 

강경책으로 대응합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았던

그 시대 일본 상황으로 인하여

 

일본 학부모 연합에서는

'3무 운동' 을 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1. 오토바이를 사지 못하게 한다

2. 면허를 따지 못하게 한다

3. 오토바이를 타지 못하게 한다

 

 

였지만..

 

청소년들의 반항과 마찰 때문에

1994년에 폐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폭주족의 쇠퇴에는

사실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도 있지만

 

의외로 인식때문에 쇠퇴한것이

더 크다고 보여집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특공복등을 입고

본인들만의 이상한 규율을 만들어

생활하는 이러한 활동들을

'촌스럽다' 라고 느껴서

 

 

이러한 폭주족들은

점차 쇠퇴하고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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