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율 2.4%" 케이팝, 미국서 이상하게 위상 높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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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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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한마음

케이팝이 미국에서 잘나간다고는 하는데, 스포티파이 같은 스트리밍 수치만 보면 '어? 생각보다 별로네?' 싶을 때가 있음. 근데 빌보드 차트 1위 찍고, 스타디움 투어 매진시키는 거 보면 또 위상은 엄청 높아 보임.
이 기묘한 불일치가 왜 생기는지, 그리고 미국 음악계 큰손들이 왜 요즘 케이팝 시스템 자체에 눈독을 들이는지 알아보자.
◇케이팝의 두 얼굴 - 스트리밍 '찐따' vs 앨범 판매 '깡패'
서구, 특히 미국 음악시장에서 케이팝의 시장 점유율은 생각보다 '매우' 낮음. 수치만 보면 아직 주류라고 보기엔 한참 모자람. 하지만 케이팝은 미국에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게임을 동시에 하고 있음.
우선 스트리밍 시장. 대스트리밍의 시대라고 하지만 전체 스트리밍 시장에서 케이팝의 위상은 너무나도 낮음. 2023년 기준 전세계 스트리밍 순위 상위 1만 곡 중에서 한국어 노래 비중은 2.4%에 불과했음. 이건 케이팝이 아직은 특정 팬덤 위주로 소비되는, '좁지만 깊은' 시장이라는 걸 보여줌.
하지만 실물 앨범 판매 (코어 팬덤 화력 지표)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임. 여기서는 그냥 시장을 씹어 먹는 수준임. 2024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CD 앨범 TOP 10 중에 무려 7개가 케이팝 앨범이었음. 스트레이 키즈, 엔하이픈, 에이티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트와이스 등이 순위를 장악함. 이 7개 앨범이 미국에서만 합쳐서 거의 200만 장 가까이 팔렸음. 오죽했으면 미국 언론에서 "요즘 CD를 사는 음악팬은 테일러 스위프트와 케이팝 팬들 밖에 없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
요즘 세상에 CD를 음악 들으려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음. 케이팝 팬덤은 CD를 '포토카드와 굿즈가 포함된 소장품'으로 인식하고, 아티스트를 응원하는 수단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임.
스트리밍, 앨범 판매, 음원 다운로드 등 모든 걸 종합해서 순위를 매기는 국제음반산업협회(IFPI) 차트를 보면 케이팝의 진짜 체급이 나옴. 2024년 '글로벌 톱 10 아티스트'에 세븐틴(3위)과 스트레이 키즈(5위)가 이름을 올렸음. 특히 실물 앨범 판매 비중이 높은 '글로벌 앨범 세일즈 차트'에서는 TOP 10 중 8개를 케이팝이 차지하며 시장을 지배함. 스트리밍의 열세를 압도적인 앨범 판매량으로 뒤집고도 남는다는 뜻임. 물론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전체 1위는 '여황' 스위프트.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슈퍼팬'의 존재에서 나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음악이 나오는대로 듣는 캐쥬얼 팬이 아니라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아티스트의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열혈 팬을 뜻함. 우리 말로 하면 부정적인 의미가 배제된 '빠순 빠돌' 정도로 볼 수 있음. 그리고 이 슈퍼팬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흔히 기획사로 불리는 아티스트의 소속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정교한 시스템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임.
◇그러면 '슈퍼팬'은 어떤 사람들일까
미국 음악 청취자 중 약 20%를 차지하는 이들은 일반 리스너와 차원이 다른 소비자 집단임. 우선 돈을 훨씬 많이 씀. 미국 케이팝 팬들은 일반 미국 음악 리스너보다 매달 음악 관련 지출을 75%나 더 많이 함. 여기에 행동 방식도 다름. 슈퍼팬의 73%가 아티스트 머치로 불리는 굿즈 즉 실물 상품을 구매하는 반면, 일반 리스너는 26%에 불과함. 또한 적극적으로 전파함. 슈퍼팬의 81%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자발적 마케터' 역할을 함.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시간이 갈수록 팬층이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
◇슈퍼팬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여기에서 케이팝 기획사들만의 독특한 '영업 전략'이 나옴.
① 중앙집중식 플랫폼 - 미국 가수들은 인스타, X(트위터), 틱톡 등 여러 플랫폼에 흩어져서 팬들과 소통하는데, 하이브 같은 K-기획사들은 '위버스'라는 자체 앱을 만듦. 여기에 팬 커뮤니티, 독점 콘텐츠, 굿즈 판매, 아티스트와의 유료 DM 기능까지 전부 통합해서 팬들을 한곳에 묶어두고 집중적으로 관리함. 팬들은 다른 곳에 갈 필요 없이 이 '슈퍼팬 앱'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함.
② 유사 사회적 친밀감 배양 - 기획사는 팬과 아티스트 사이에 깊고 개인적인 유대감이 생기도록 전략적으로 관리함. 위버스나 버블 같은 플랫폼을 통해 아티스트가 직접 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무대 밖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은 비하인드 콘텐츠를 끊임없이 공급함. 이를 통해 팬들은 아티스트를 단순한 연예인이 아니라, 자기가 돌보고 성장시켜야 할 '내 새끼'처럼 느끼게 됨.
③ 팬덤 활동의 게임화 - 팬덤에게 '아미(BTS)', '블링크(블랙핑크)' 같은 공식 명칭과 정체성을 부여하고, '빌보드 차트 1위 만들기', '시상식 투표 이기기' 같은 명확한 목표를 줌. 팬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팀을 짜서 스트리밍 총공, 앨범 공동 구매 등을 조직함. 아티스트의 성공이 곧 팬덤의 승리가 되는, 일종의 '게임'처럼 작동하는 것임.
◇미국 시장 거인들의 뒤늦은 참여
이런 '돈 되는' 케이팝 시스템을 미국 음악 산업계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리 없음. 미국 3대 음반사(소니뮤직, 워너뮤직, 유니버설뮤직)들은 "이 시스템, 탐난다"며 뒤늦게 뛰어듦. 미국 음반사들은 스트리밍으로 푼돈 버는 것보다, 소수 정예 슈퍼팬들에게 고가의 굿즈와 앨범을 파는 케이팝 모델이 훨씬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높다는 걸 깨달았음. 스트리밍 한 번 돌려봐야 떨어지는 돈은 몇 센트(원) 단위임. 하지만 실물 음반과 관련 상품은 돈다발의 굵기 자체가 다름. 그래서 이제는 단순히 케이팝 그룹을 데려오는 걸 넘어, 그 '시스템' 자체를 수입하기 시작함.
① JYP & 리퍼블릭 레코드(기존 아티스트 강화 모델)
JYP가 트와이스, 스트레이 키즈처럼 잘 훈련되고 코어 팬덤을 갖춘 '완성형 상품'을 만들면, 미국 최대 음반사 중 하나인 리퍼블릭 레코드(유니버설 산하)가 자신들의 막강한 유통망과 마케팅 파워로 미국 주류 시장 정상에 올려주는 방식. 2020년 트와이스로 시작해서 , 2022년 스트레이 키즈와 ITZY로 확장했고 , 2023년에는 JYP의 모든 아티스트를 포괄하는 전면적 파트너십으로 발전했음. 리퍼블릭 레코드의 CEO 몬테 립먼은 "다음 케이팝 폭발의 최전선에 설 엄청난 기회"라며 "그 잠재력은 무한하다"고 말했음. 참고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운드트랙 퍼블리싱을 리퍼블릭이 했는데, 이 과정에서 JYP 소속 트와이스를 끌어들였음.
② 하이브 & 게펜 레코드(시스템 현지화 모델)
이게 가장 혁신적인 방식임. 한국 그룹을 수출하는 게 아니라, '아이돌 트레이닝 및 팬덤 구축 시스템' 자체를 미국에 통째로 이식하는 것. 이 결과물이 캣츠아이(Katseye) 프로젝트. 전 세계에서 12만 명의 지원자를 받아, 2년간 LA에서 한국식 아이돌 트레이닝을 시켜 데뷔시키는 과정을 리얼리티 쇼와 넷플릭스 다큐(팝스타 아카데미)로 공개함. 데뷔 전부터 연습생을 향한 팬들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팬덤을 만드는 전형적인 케이팝 공식을 그대로 적용함. 실제로 캣츠아이의 스포티파이 청취자 중 한국 비중은 1%에 불과하지만, 미국 비중은 20%가 넘음.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현지화 전략이 먹혔다는 증거. 참고로 하이브와 게펜의 합작사인 '하이브 X 게펜'의 지분율은 51-49로 알려졌음.
캣츠아이는 하이브가 게펜의 모기업인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과 10년 전략적 제휴를 맺은 뒤 나온 첫 결과물. 캣츠아이는 최근 열린 시카고 롤라팔루자 페스티벌에서 8만5천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이 행사 역사상 낮공연 최다 관중을 기록함.
하이브는 미국 영업에도 전력을 기울이면서 아리아나 그란데라는 초특급 스타를 위버스에 영입함. 그 결과 현재 미국 3대 음반사들은 위버스와 같은 슈퍼팬 앱을 서로 도입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음. JYP 또한 리퍼블릭과 함께 미국 현지 걸그룹 '걸셋(전 Vcha)'을 론칭시키는 등 글로벌 전략을 활발히 수행중임.
*세 줄 요약
-케이팝은 미국에서 대중적 스트리밍 같은 절대적 수치에선 약하지만, '슈퍼팬'들의 압도적인 실물 앨범(상품) 구매력 덕분에 실제 위상이 수치보다 훨씬 높게 평가됨.
-이 슈퍼팬들은 '위버스' 같은 전용 플랫폼과 정서적 교감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통해 기획사가 체계적으로 만들어낸 '충성 고객'이자 '무급 마케터'들임.
-미국 대형 음반사들이 이 '팬덤 장사'가 돈이 된다는 걸 깨닫고, 리퍼블릭과 JYP처럼 기존 그룹을 함께 띄우거나, 게펜과 하이브처럼 아예 케이팝 시스템을 통째로 수입해 미국 현지 그룹(캣츠아이)을 만드는 단계까지 왔음. 여기에 위버스 같은 자체 슈퍼팬 앱 구축까지 나섬.